들쑥날쑥 건물들에, 끝없는 지평선 같은 건 잊은지 오래고
황사며 매연에, 새파란 하늘은 꿈에서나 볼 법하며
껌딱지 눌러붙은 아스팔트에, 흙 밟아본 느낌도 아련하지만
그래도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들어 지긋이 살피면
어서 알아 채고 미소지어 주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예쁘고 놀라운 것들이, 여기, 저기, 무척 많이
펼쳐져 있다.
- 홍대앞
(2007-4-6)
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인 서울에서 이런 '맨 땅'을 발견하면
낯선 느낌과 반가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강 가에 모래톱이 있고 갈대가 무성한 풍경이
반갑지도 않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곳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강 시민공원 광나루지구
(Friday 2007-3-30)
현대 문명도시에서의 삶이란,
가벼운 흥분과 적당한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퇴근길 저녁,
문득, 차창 밖의 황홀한 저녁 노을에 시야를 압도당하고
존재의 안과 밖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라도,
일단 견인지역을 벗어날 때까지는 주차하지 못하는 것.
- 천호동
(Friday 2007-3-23)
요즘은
'코 푼 종이 말려서 밑 닦는다' 라고 하면
듣는 이에게 지저분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엽기적인 우스개소리라고 타박을 받을 테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 말은,
종이를 조금 더 잘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진지한 충고였다.
요즘은
더욱 많이 생산하고, 더욱 빨리 소비하는 것만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 통용되는,
그런 시절이다.
-암사역
(Friday 2007-3-16)
지상 최고의 낙원은
몰디브, 하늘색 바다와 설탕빛 모래의 무인도에
사하라 한복판, 별 쏟아지는 오아시스 마을에
카리브, 원시림 너머의 은밀한 바닷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로 2가 허름한 악기시장에서 구입한 24홀 하모니카에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낙원, 내가 가진 파랑새의 가장 큰 단점은
쉽게 그리고 까맣게, 잊혀진다는 거다.
- 낙원시장
(Friday 2007-3-9)
내 안의 마음이 조금씩 흘러넘칠때
그것을 담아둘 가장 좋은 그릇은 바로 '타인'이다.
필요할 때 내 마음 받아줄 이가 바로바로 나타나 주면 좋겠지만,
이래저래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보송보송한 임시 포장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인형'이다.
- 강남
(Friday 2007-3-2)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에 첫 걸음을 떼기 좋은 시기
누구도 만들지 않았던 것을 손수 만들어보기에 좋은 시기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새로 만나기에 좋은 시기
새 봄이 오고 있습니다
- 홍대앞
(2007.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