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7일 금요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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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목표는 잡힐듯 잡히지 않고
왼쪽의 조력자는 지평선 너머에 가물가물하고
오른쪽의 방해꾼은 쉴 새 없이 태클을 걸고
사나운 적의 거친 숨결이 목덜미 바로 뒤에서 느껴질 때

턱과 어깨의 힘을 빼고
고개를 조금만 들어보세요

복잡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덮고있는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이,  참 단순한 존재입니다.

- 삼성동

2007년 4월 12일 목요일

비 그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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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흠뻑 머금고 잠에서 깨어, 활짝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새 잎이
마치 애기 손같다..

아파트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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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카로운 직선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보다는
나긋나긋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숲이 더 좋다.

하지만 사실 나는,
풀과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조용한 숲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는 시끄러운 도시가 더 좋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 암사동

(Friday 2007-4-13)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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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쑥날쑥 건물들에, 끝없는 지평선 같은 건 잊은지 오래고
황사며 매연에, 새파란 하늘은 꿈에서나 볼 법하며
껌딱지 눌러붙은 아스팔트에, 흙 밟아본 느낌도 아련하지만

그래도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들어 지긋이 살피면
어서 알아 채고 미소지어 주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예쁘고 놀라운 것들이, 여기, 저기, 무척 많이
펼쳐져 있다.

- 홍대앞

(2007-4-6)

모래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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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인 서울에서 이런 '맨 땅'을 발견하면
낯선 느낌과 반가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강 가에 모래톱이 있고 갈대가 무성한 풍경이
반갑지도 않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곳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강 시민공원 광나루지구

(Friday 2007-3-30)

견인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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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도시에서의 삶이란,
가벼운 흥분과 적당한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퇴근길 저녁,
문득, 차창 밖의 황홀한 저녁 노을에 시야를 압도당하고
존재의 안과 밖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라도,

일단 견인지역을 벗어날 때까지는 주차하지 못하는 것.

- 천호동

(Friday 2007-3-23)

하루살이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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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코 푼 종이 말려서 밑 닦는다' 라고 하면
듣는 이에게 지저분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엽기적인 우스개소리라고 타박을 받을 테지만.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 말은,
종이를 조금 더 잘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진지한 충고였다.

요즘은
더욱 많이 생산하고, 더욱 빨리 소비하는 것만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 통용되는,
그런 시절이다.

-암사역

(Friday 2007-3-16)

낙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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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낙원은
몰디브, 하늘색 바다와 설탕빛 모래의 무인도에
사하라 한복판, 별 쏟아지는 오아시스 마을에
카리브, 원시림 너머의 은밀한 바닷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로 2가 허름한 악기시장에서 구입한 24홀 하모니카에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낙원, 내가 가진 파랑새의 가장 큰 단점은
쉽게 그리고 까맣게, 잊혀진다는 거다.

- 낙원시장
(Friday 2007-3-9)

인형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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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마음이 조금씩 흘러넘칠때
그것을 담아둘 가장 좋은 그릇은 바로 '타인'이다.
필요할 때 내 마음 받아줄 이가 바로바로 나타나 주면 좋겠지만,
이래저래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보송보송한 임시 포장지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인형'이다.

- 강남

(Friday 2007-3-2)

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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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에 첫 걸음을 떼기 좋은 시기
누구도 만들지 않았던 것을 손수 만들어보기에 좋은 시기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새로 만나기에 좋은 시기
새 봄이 오고 있습니다

- 홍대앞
(2007.2.23)

연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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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매서운 바람에 연을 띄운다
연은 풍선과도 다르고 종이비행기와도 다르다
둥실둥실 수소풍선이 꿈을 나타내고
경쾌하게 날아가는 종이비행기가 그 실현을 보여준다면
연은 평생토록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호흡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느슨하게 풀기만 해서는 높이 올라갈 수 없고
마냥 당기기만 해서는 멀리 나아갈 수 없다

- 한강시민공원

(Friday 2007-2-9)

구리방향 강변북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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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정지등과 끼어들기 깜빡이만을 신경쓰며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반복 조작하는
출근시간의 구리방향 강변북로.
새벽과 아침의 몽롱한 경계를 달리던 어느덧 정면에 해가 뜨고,
푸르스름하던 세상은 태양의 영향력에 들어가기 시작한 황금빛 영역과
여전히 태양을 등지고 있는 검은 실루엣 영역으로 이분된다.
이제 곧 태양은 지배자의 위용을 완전히 찾게 될 것이고,
정체가 풀리며, 사람들은 또 저마다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

- 강변북로
(Friday 2007-2-2)

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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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 옛날 풀빵을 구워 파는 노부부가 있다.
이 국화모양의 풀빵틀은 뚜껑이 없고 틀이 고정되어 있어
빵 하나하나를 삼겹살 뒤집듯이 송곳으로 뒤집어주어야 골고루 익게 된다.
이에 비하면, 수십년째 노상제빵업계를 대표하고 있는 붕어 모양의 빵틀은
밀봉한 틀을 돌려가며 손쉽게 구울 수 있는 '신형 제빵기'이고,
휴게소에서 볼 수 있는 대형 호두과자 기계는
재료 주입과 뒤집기, 완성단계가 완전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최신식 시스템'인 셈이다.

출시된지 두 달 남짓 지난 제품도 '구형'이 되어버리는 요즘 세상에도
길 가다 찬바람 쌩 하고 몰아치면, 풀빵 사 먹고 에너지 보충 해야 하는거다.

- 인사동
(Friday 2007-1-26)

눈내린 주차장에 주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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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벌써 이렇게 많이 쌓였나'
'어, 여기 비었네'
'좀 지나쳤네, 다른 곳에 빈자리 있을까'
'그냥 여기 대야겠다'
'너무 틀었네'
'뽀득뽀득 핸들 잘 돌아가는군'
'이런, 문 열기 힘들겠다'
'선도 안보이고 무지 좁게 대놨네, 딴 곳 찾아볼 걸 그랬나.'
'에휴, 그럭저럭 잘 댔다.'
'와, 그나저나 눈 많이 내렸구나!'

- 대방동
(Friday 2007-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