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한 빌딩을 나와 보도를 지나고 낮시간 배차간격과 막차 시간표와 내렸을 때 계단과 가장 가까운 플랫폼까지 훤히 알고 있는 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을 내려 다시 익숙한 거리로 나와 시장과 단골 가게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방청객들이 내는 떠들썩한 감탄사를 들으며 등에 익은 침대에 몸을 누인다. 그리고는 꿈꾼다, 황량한 사막과 이국적인 해변, 낯선 풍습의 사람들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인생의 무게를 절감하게 해 주는 묵직한 배낭을 부쳐버리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비행기에 오른다. 이제 도착할 곳은 어떤 곳일까. 공항을 나섰을 때 내 얼굴을 확 휘감을 공기의 느낌은 어떨까.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어떤 분위기일까, 더운 물이 나오는 화장실과 일정한 전압의 전기 콘센트를 쓸 수 있는 깨끗한 숙소를 싸게 구할 수는 있을까. 길거리에는 중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과일을 사러 들른 시장 골목에는 소매치기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지는 않을 것인가. 기내식과 함께 제공되는 포도주를 한 잔 더 청해 마시고는 좁은 의자에서 뒤척이며 내가 누렸던 모든 익숙함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한다.
저 길 너머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르고, 이정표에 등장하는 지명과 언어가 하나같이 낯선 상태. 이것이 여행이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나를 날려줄 비행기에 몸을 실어버릴 때, 잠자고 있던 나의 절반이 비로소 깨어난다. 내 몸에 흐르는 피는 안락한 휴식과 낯선 땅의 냄새를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다.
(코스모폴리탄 2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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