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 25일 토요일

여행의 이유

세계 각 도시를 향하는 이정표. 아직은 서울 대신 도꾜 이정표를 통해 한국과의 거리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 뉴질랜드 파울윈드 2003.05


칠레 이스터섬은 규모나 풍경에서 마치 제주도 옆의 섬 우도를 연상시키는 섬이다. 검은 화강암 사이에 난 붉은 황토길을 4륜구동 오토바이로 달리다 찍은 사진. - 칠레 이스터섬 2003.07


볼리비아의 버스터미널 사진. 이 사진을 찍고 올라탄 장거리 버스에서 카메라 한 대를 도난당하고 말았다. - 볼리비아 아레끼빠 2003.7

이집트 술탄 호텔 1층 모습. 50년 전 영국 식민정부가 빠져나간 이후로 단 한번도 보수되지 않은듯이 보이는 건물이다. - 이집트 카이로 2003.12

시드니에서 산티아고를 가는 비행기가 오클랜드 공항에 중간기착했다. 하늘을 향하는 항구, 공항은 언제나 가벼운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 뉴질랜드 오클랜드 2003.06



익숙한 빌딩을 나와 보도를 지나고 낮시간 배차간격과 막차 시간표와 내렸을 때 계단과 가장 가까운 플랫폼까지 훤히 알고 있는 역에서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을 내려 다시 익숙한 거리로 나와 시장과 단골 가게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와서는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방청객들이 내는 떠들썩한 감탄사를 들으며 등에 익은 침대에 몸을 누인다. 그리고는 꿈꾼다, 황량한 사막과 이국적인 해변, 낯선 풍습의 사람들과 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인생의 무게를 절감하게 해 주는 묵직한 배낭을 부쳐버리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비행기에 오른다. 이제 도착할 곳은 어떤 곳일까. 공항을 나섰을 때 내 얼굴을 확 휘감을 공기의 느낌은 어떨까.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은 어떤 분위기일까, 더운 물이 나오는 화장실과 일정한 전압의 전기 콘센트를 쓸 수 있는 깨끗한 숙소를 싸게 구할 수는 있을까. 길거리에는 중무장한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과일을 사러 들른 시장 골목에는 소매치기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지는 않을 것인가. 기내식과 함께 제공되는 포도주를 한 잔 더 청해 마시고는 좁은 의자에서 뒤척이며 내가 누렸던 모든 익숙함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한다.

저 길 너머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르고, 이정표에 등장하는 지명과 언어가 하나같이 낯선 상태. 이것이 여행이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나를 날려줄 비행기에 몸을 실어버릴 때, 잠자고 있던 나의 절반이 비로소 깨어난다. 내 몸에 흐르는 피는 안락한 휴식과 낯선 땅의 냄새를 동시에 필요로 하고 있다.

(코스모폴리탄 2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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